하얀거탑에 대한 여섯 가지 이야기
무거운 이야기 (舊) | 2007/03/09 00:45
1. <하얀 거탑>은 한국 실정엔 잘 맞지 않는다지만, 병원을 비롯한 모든 사회의 전근대성과 봉건성을 고발한 뛰어난 소설이 원작이다. 세세한 설정 하나하나는 매우 비현실적이지만, 그 안에 깔려있는 인간관계의 경직성, 봉건성, 폭력성, 병영문화, 공포마저 불러일으키는 구체제(앙시앙 레짐)에 대한 묘사는 충분히 현실적이다. 말하자면 하얀거탑 자체는 "명인대학교 부속병원"이라는 가상의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가상의 사회는 현존하는 모순과 사회적 문제를 거의 완벽하게 반영한 평형 세계다. 따라서 이 드라마는 그 주제와 소재에서부터 일단 점수를 따고 들어간다.
2. (아마도 어느 정도 여유를 두고 제작되었을) 드라마 초반은 원문의 사건 하나 하나를 훨씬 생동감있게 영상 속에 재현하였다. 거기에 장준혁이나 최도영 등 주연급 인물은 물론, 희화화된 '정치적 인간'인 의사회장 유필상의 캐릭터나, 기사도란 갑옷을 입었지만 결국 약한 인간에 불과한 외과과장 이주완 등 조연 한 사람 한 사람의 힘도 막강했다. 이렇게 비중이 적은 조연까지도 인물 하나 하나가 나름대로의 매력을 풍기며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덕분에 장준혁이 외과 과장으로 선출되기까지 이 드라마는 사건과 인물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명품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3. 그러나 (아마도 점차 '당일치기'가 익숙해지고, 스케쥴에 쫓기느라 정신이 없었을) 중반 이후로 가면서 드라마의 흡입력이 몰라볼 정도로 떨어졌다. 드라마 스태프들의 노고를 생각할 때 감히 말하기 힘든 얘기긴 한데, 이야기의 밀도 자체가 낮아지고 완성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이야기가 과도하게 장준혁 과장에게 집중되면서 장준혁을 제외한 모든 인물의 성격이 완전히 죽어버렸다. 내부에서 우러나오는 압도적인 힘을 가졌어야 할 최도영(이선균)은 책 읽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꼼생이가 되었고, 사회의 모순은 물론 자기 자신이 지닌 모순까지 감당해야 하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좌파'였어야 할 이윤진(송선미)은 단순히 철없는 강남좌파로 전락해 버렸다. 인물이 이렇게까지 엉망이 되었다는 것은 이야기 자체가 이미 설득력을 잃고 시쳇말로 '막장'으로 전락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이정도라도 버텨낸 것은 연기자들의 압도적인 연기와 연출의 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4. 결국 이 모든 것은, <하얀거탑>이 우리가 기다리던 명품 드라마로 완성되지는 못했음을 증명한다. 디시인사이드 등지에서 형성된 팬덤에서 염동일(기태영)이나 최도영(이선균)이 '비현실적'이라는 비난을 받는 이유도, 이윤진(송선미)이 '오지랖만 넓다'며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받는 것도 실은 드라마의 완성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읽히지 않는 메시지는 메시지가 아니다. 작자의 머리 속에 최도영이 암만 양심적인 의사로 남았더라도, 이윤진이 암만 양심적인 사회운동가로 남았더라도, 시청자들에게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다면 이 드라마는 결론적으로 실패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가 단순히 드라마의 재해석에 그치지 않고, 내용의 설득력과 밀도가 저하되는 현상을 동반하여 나타났다는 점이 <하얀거탑>의 실패를 다시 한 번 증명한다. 주인공급으로 설정되었던 최도영이나 이윤진을 생각해 보라. 최도영이 나오는 씬이 몇 개나 되는가? 이윤진이 나오는 씬은 대체 몇 개나 되는가? 얘기 자체를 안 하는데, 대체 어떻게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이해하라는 것인가? 작가는 <하얀거탑>이 수 명의 입체적 캐릭터가 꾸려가는 장편소설임을 망각했음이 분명하다. 원작의 사건을 충실히 재현했지만, 그 사건의 바탕은 없어졌다.
5. 물론 그렇다고 "찌질해져버린" <하얀거탑>의 팬덤을 옹호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 팬덤은 그 나름대로 찌질하다.
6. 나중에 전 명인대 병원 외과과장인 이주완(이정길)에 대한 이야기를 따로 하고 싶다. 최도영(이선균), 이윤진(송선미), 유미라(장소연) 등, 중후반 이후 장준혁 및 그 일파 외의 인물들이 하나같이 엉망이 되어버린 와중에서도 이주완은 그 나름대로 캐릭터의 매력이 살아있었다. 그래서 더 아쉽기도 하다. 이주완은 나를 닮았다. "착한 척, 예의바른 척, 올곶은 척 하지만 결국 자신의 이권이 걸린 일에서는 옳음보다 이익을 먼저 챙기는" 그런 약해빠진 나를 닮았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주완을 닮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주완이란 캐릭터를 빌려 그 약함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다.
ⓣ http://yeinz.kr/blog/trackback/221 (주소를 클릭하면 클립보드로 복사됩니다.)

1번에 대해서라면, 하얀거탑이 일본 원작을 그대로 옮겨오면서 일본의 병원제도까지 그대로 가져와버렸습니다. 그에 대해 한국 실정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지. 하얀거탑의 내용 자체가 한국 실정과 맞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글쎄요..최도영과 이윤진이 주인공 급이던가요?
원래부터 조연급인데...초반부 같이 이끌어가던 차인표도
조연급 제안이라 처음은 망설였다고 하던데요...
그리고, 최도영, 이윤진에 대한 착한의사, 양심적인 사회운동가로
박수만 받는 역할을 일부러 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
장준혁 자체에서도 내부 모순이 많듯, 최도영, 이윤진, 이주완 캐릭터에서도
수많은 내부 모순이 있고, 그에 대해 갈등하고, 시청자에게 고민을 안겨주고..
악한 캐릭터인듯 보여도 악하기만 하지 않은...
현실의 세상을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원작이 수 명의 캐릭터가 이끄는 장편소설일지 모르지만,
드라마나 영화로 바뀐다면 각색이 되죠...보통 영화나 드라마가
원작각색의 실패로 끝나는 경우의 상당수가 원작에 지나치게
충실하려다보니 이야기구조가 너무 산만해지고 정신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같은 경우는 후반부로 갈수록 더 흡입력이 있고, 좋습니다.
그리고, 하얀거탑은 당일치기나 쪽대본같은 우리나라 드라마의 약점이 별로 없는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물론 좀 빡빡히 찍긴하겠죠)
지금까지 어디서도 하얀거탑이 실패라는 말을 못보았고,
그리고 드라마 잘 챙겨보지 않는 저도
너무 재밌게 보고 있어서 글 남깁니다.
예인즈 회원님의 포스트가 미디어몹 헤드라인에 링크되었습니다.
1편부터 8편, 딱 과장선거 끝날때까지는 방영 전에 미리 찍어놨댑니다. 그 이후에는 아마 급하게 찍느라 완성도가 떨어지지 않았나 하네요. 거탑 팬으로서 아쉬운 부분입니다. 너무 장준혁 중심으로만 돌아가는 것도 그렇고.. 최도영이 비중이 너무 작은게 가장 아쉬운 부분이네요.
원작이, 하얀 거탑이란 봉건적인 '시스템'이 장준혁이란 인간을 어떻게 파괴해가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드라마는 장준혁이란 인간의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을 묘사하는데 그 정력을 온전히 바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즉 원작에서는 명인대학교부속병원, 즉 거탑 자체가 악역을 맡음으로써 장준혁같은 야심 넘치는 거만한 의사도, 최도영같은 양심적이고 능력있는 의사도 그 거탑이란 시스템 하에서 희생된 '불쌍한 사람들'이란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반해, 드라마는 거탑의 봉건성에 대한 묘사가 불충분한 나머지 그냥 야심과 자신감 넘치는 외과의 장준혁이 송선미, 염동일, 최도영 같은 "착한 척 하는 오지랖 넓은 인간군상"에 치여 불쌍하게 몰락해가는 이야기로 변질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거탑의 봉건성을 묘사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의 묘사가 있었어야 하느냐, 고 묻는다면 작가가 아닌 저로서는 대답할 길이 막막하긴 한데..... 역시 아무리 장준혁이 원톱이 되어 전개해가는 드라마라 해도 최도영이나 송선미, 강희재 등의 중심인물이 의국원들보다도 낮은 비중으로 끽해야 한 씬, 두 씬씩만 출연한 점이 문제라고 봅니다. 거탑의 봉건성이 장준혁을 몰락시키는 과정에 치중한 나머지, 거탑의 봉건성이 나머지 인간군상들, 최도영이나 송선미, 이주완 등에게 어떤 악행을 저질렀는가를 전혀 묘사하지 않은 것이죠. 이로서 거탑의 봉건성은 사람들에게 와닿지 않고, 최도영, 송선미 등이 괜히 착한 척 하면서 장준혁을 괴롭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장준혁을 제외한 캐릭터의 설득력도 약합니다. 얼음쇠 님이 지적해주신 것처럼, 박건하가 거기서 그렇게 질질 짜는 건 그동안의 캐릭터 묘사와 거의 '완전하게' 배치됩니다. 병원의 선후배 사이란 게 얼마나 애정어린(?) 관계인지는 저도 병원 생활을 해 본 게 아니라 잘 알 수 없으나, 끽해야 좀 가까운 상급자와 하급자 사이, 차갑게 말하자면 계약 관계에 지나지 않는 그들이 그토록 가슴 절절한 슬픔을 느낀다는 건 상당히 어색합니다. 특히 그동안 박건하의 캐릭터를 생각해보자면 더욱 그래요. 박건하란 인물은 사실 하얀 거탑(병원)의 봉건성을 굉장히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존재거든요. 따라서 이 드라마가 정말 하얀 거탑이란 봉건성에 죄를 돌리고자 했다면, 마지막에 박건하에게까지 그런 면죄부를 주면 얘기나 주제가 완전히 꼬여버려요. 뭐랄까, 장준혁의 죽음을 앞두고 통속적 요소를 극대화했다는 느낌인데, 그런 통속성을 거탑에서 보고 싶진 않았거든요. 그리고 거탑 작가는, 의도적인지는 몰라도 소위 "착한 척 하는 그룹"으로부터 그 통속성을 대체로 배제함으로써 '진짜 인간다운 사람들'의 지위를 소송과정에서 가장 비인간적인 면모를 보였던 장준혁 일파에게만 선사합니다. 또한 놀라운 것은, 장준혁의 죽음과 더불어 소송 과정에서 불거졌던 인물의 내적 갈등이 삽시간에 봉합되어버린다는 점이에요. 이는 원작에서 2인 이상이 맡았어야 할 역할들을 드라마의 특성상 1인에게 몰아줌으로써 발생한 현상이 아닌가 합니다.
저 또한 하얀거탑이 실패작이라는 의견이 많지 않음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염동일이나 최도영의 캐릭터가 비현실적이란 의견은 꾸준히 나오고 있고, 최도영 역을 맡은 이선균 씨는 "나도 최도영이란 캐릭터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폭탄 발언까지 했거든요. 하얀거탑이 앞으로 드라마가 나아가야 할 모범적인 상을 보이기도 했고, 여러모로 참 좋은 드라마였기 때문에 이렇게 자꾸 말을 돌려서 얘기가 나오는 거라고 봐요. 좋은 드라마였죠. 그러나 팬덤에서 나오는 반응은 끽해야 "장준혁 불쌍하다" "송선미같은 착한 척 하는 인간군상들이 피해를 준 것이다" 같은 저질의 것들이에요.
거탑의 스태프들은 기획의도에서 "의학계 이면을 조명하고"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을 보여주며"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져 자기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착한 척 하지 말라"가 기획의도였다면야 그 메시지의 도덕성 여부와 관계없이 기획의도를 잘 살린 드라마였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이 드라마는 결국 최초의 기획대로 완성되지는 못했다는 것이죠. "착한 척 하지 말라"는 기괴한 메시지만 던진 채로. 과장 선거까지의 에피소드와 그 이후의 에피소드를 비교해보면 거탑의 실패는 좀 더 명확해집니다.
근데 저 거탑 팬입니다. 인류 최고의 드라마 대장금 이래 (ㅎㅎㅎ) 가장 재미있게 본 드라맙니다. 보면서 남은 것들도 많구요. 그래서 더 아쉬운 거에요. 사실 "소문난 칠공주" 따위가 암만 막장 스토리로 달음질쳐가든 말든 관심조차 없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습니까. 그러지 않았던 드라마가, 그러지 말았으면 했던 드라마가 변질되어가는 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좋은 드라마에요.
안녕하세요. 좋은 글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하얀거탑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얘기지만 한번쯤 꼭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이 있어서요. 사회에 대한 확고한 주관도 가지고있고, 굉장히 성숙한 의식을 가진 듯 보이시는 분이신데 왜 블로그를 벗어난 오프라인으로의 사회참여는 너무나 소극적이시고, 심지어 일종의 거부감마저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뭐 저도 일부 운동권들에 대한 거부감은 알겠지만 좋은 시민단체들도 찾다보면 얼마든지 나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혼자서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함께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해나가는 쪽이 더 무언가를 이룰 수있지 않나 합니다. 음...... 솔직히 말하면 아직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고등학생이라서 그쪽으로의 경험도 아예 없다시피하고, 하지만 저에게 어느 정도 사회의식이 자라난 뒤부터 수많은 부조리에 대해 그것의 원인과 대책을 탐구하고 구체적인 실천으로까지 발전될수 있는 공동체는 아무래도 시민단체밖에 없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해왔고, 훗날 시민운동가로 살 수 있었으면...하는 바람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러가지 정보들이나 글들을 통해서, 운동권이란 말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지는 거부감을 통해서 어쩌면 내가 생각한 공동체는 그야말로 상상의 공동체에 불과했던 것이었나 하는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인님에게 물어봅니다. 당신은 운동권이란 세계에 대해 어떤 인상을 받으셨던 건가요?
그 문제는 조금 정리를 해서 다음에 별도의 포스팅으로 말씀드리도록 할게요. 좀 늦더라도 이해해주시길... :)
쓰레기같은 글을 괜히 읽었다....사고의 한계...
확실히 과장선거후 당위성이 없는 캐릭터들이 많이 보입니다. 최도영연기를 하는 이선균이 당시 기사로 최도영연기가 답답하다고 할정도였으니 말다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