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만 아는 의사놈이 뭐 어때서
무거운 이야기 (舊) | 2007/03/21 00:51
부르주아는 자신들이 지배권을 획득한 곳에서는 어디서나 모든 봉건적, 가부장적, 목가적(牧歌的) 관계를 파괴했다.
부르주아는 사람을 타고난 상전들에게 얽매어 놓고 있던 온갖 봉건적 속박을 가차 없이 토막 내 버렸다. 그리하여 사람들 사이에는 노골적인 이해관계와 냉혹한 '현금 계산'외에는 아무런 관계도 남지 않게 되었다. 부르주아는 종교적 광신, 기사적(騎士的) 열광, 속물적 감상 등의 성스러운 황홀경을 이기적인 타산이라는 차디찬 얼음물 속에 집어넣어 버렸다. 부르주아는 사람의 인격적 가치를 교환 가치로 해체했으며, 특허장으로 보장되거나 투쟁을 통해 얻어진 수많은 자유 대신에 단 하나의 파렴치한 자유, 즉 상거래의 자유를 내세웠다. 한마디로 부르주아는 종교·정치적 환상에 의해 가려져 있던 착취를 공공연하고 파렴치하며 직접적이고도 잔인한 착취로 바꾸어 놓았다.
부르주아는 지금까지 영예로운 것으로 생각되어 왔고 사람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보아 오던 모든 직업에서 그것들이 갖고 있던 후광을 빼앗았다. 그들은 의사, 법률가, 성직자, 시인, 학자들을 자신이 고용하는 임금 노동자로 만들어 버렸다.
부르주아는 가족 관계에서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감상의 껍데기를 벗겨 순전히 금전 관계로 바꿔 버렸다.
부르주아는 사람을 타고난 상전들에게 얽매어 놓고 있던 온갖 봉건적 속박을 가차 없이 토막 내 버렸다. 그리하여 사람들 사이에는 노골적인 이해관계와 냉혹한 '현금 계산'외에는 아무런 관계도 남지 않게 되었다. 부르주아는 종교적 광신, 기사적(騎士的) 열광, 속물적 감상 등의 성스러운 황홀경을 이기적인 타산이라는 차디찬 얼음물 속에 집어넣어 버렸다. 부르주아는 사람의 인격적 가치를 교환 가치로 해체했으며, 특허장으로 보장되거나 투쟁을 통해 얻어진 수많은 자유 대신에 단 하나의 파렴치한 자유, 즉 상거래의 자유를 내세웠다. 한마디로 부르주아는 종교·정치적 환상에 의해 가려져 있던 착취를 공공연하고 파렴치하며 직접적이고도 잔인한 착취로 바꾸어 놓았다.
부르주아는 지금까지 영예로운 것으로 생각되어 왔고 사람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보아 오던 모든 직업에서 그것들이 갖고 있던 후광을 빼앗았다. 그들은 의사, 법률가, 성직자, 시인, 학자들을 자신이 고용하는 임금 노동자로 만들어 버렸다.
부르주아는 가족 관계에서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감상의 껍데기를 벗겨 순전히 금전 관계로 바꿔 버렸다.
맑스는 공산당 선언을 통해 부르주아지의 등장과 자본주의의 양상을 다소 선정적으로, 그러나 가감없이 그려냈다. 맑스가 예언했던 "프롤레타리아의 단결"과 "공산주의의 대두"는 소비에트를 통해 실현되었으나 결국 시장경제의 압도적인 효율성 앞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속성과 그 미래에 대한 그의 예측은 여전히 무섭도록 무거운 현실감을 선사한다.
민주노동당(중 NL 계열이 아닌 이들)을 지지한다면, "자본가를 까부수자"는 사회당의 모토에 공감한다면 의사와 법률가, 성직자와 시인, 학자로부터 목가적인 관계를 기대해도 좋을지 모른다. 그런 사람이어야만 훌륭한 목사님, 양심적인 의사 선생님, 공명정대한 법관님, 세상을 초월한 작가님 따위를 소망하며, 헌금만 찾는 목사놈, 보험수가에만 관심있는 의사놈, 전관예우에만 깍듯한 법관놈, 이름 팔아먹는 작가놈 따위를 욕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좌파든 우파든 관계없이, 결국 15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중저가 브랜드의 캐주얼을 입으며 그로부터 효용을 얻는 자본주의의 인간이다. 옛부터 사회학자들은, "카페에 앉아 공산주의를 논하는 인간이야말로 가장 거짓된 인간"이라고 말한 바 있다. 요즘 유행하는 단어로 치자면 '된장성'의 표본이라는 것이다. 조금만 더 엄격해지자면, 결국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든 말든, 희망사회당에 공감하든 말든 우리가 이 위대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안에서 그 열매를 즐기며 살아가는 한 공산주의나 탈 자본주의 따위를 논할 자격이 없다는 얘기다. 따라서 과거의 봉건적이고 목가적인 관계, 휴머니즘과 봉사정신 따위도 포기해야 마땅한 것이다.
의사는 인명을 다루므로, 법률가는 인간을 심판하므로, 목사는 성스러운 직업이므로, 시인은 초월적인 영감 그 자체이므로..... 이런 이유로 그들에게 자본주의의 열매(=돈)를 포기하고 인간적이고 봉사적인 마음으로 직업에 종사할 것을 종용한다면, 다들 콧방귀를 뀌어 화답할 것이다. 그들 또한 눈이 있고 귀가 있는 이상에야, 모두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열매를 맛있게 먹고 있는 것을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시장경제의 열매를 맛있게 먹고 있던 이들이 갑자기 정색을 하며 탈 자본주의적 정신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또한 수많은 이들이 이미 돈을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고, 명예나 신성, 지식이나 권위 따위를 그 부가가치로 끌어내려버린 바, 다른 어떤 가치로도 돈의 가치를 대체할 수 없음이 사회적으로 명백하다. 아마 아직 선(善)한 얼굴을 잃지 않은 도덕주의자들만이 그 요구에 응할 것인데, 본디 도덕주의자란 굳이 누가 종용치 않더라도 도덕적 행위를 하기 마련이니 굳이 그런 요구를 할 필요가 없다.
민주노동당은 스스로를 '좌파'로 규정하지만, 그 좌파 또한 시장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 고민해야 할 문제는 의사와 법률가, 성직자와 시인, 학자들에게 '목가적 가치'나 '인간적 면모', '봉사와 희생' 따위를 어떻게 하면 강요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그 모든 것들은 자본주의의 속성에 따라 '현금 계산'이란 단 하나의 가치로 치환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우파와 좌파를 막론하고 우리가 진실로 고민해야 할 것은, 그들로 하여금 어떻게 하면 '최대한 인간적인 것처럼 보이는' 행위를 하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이다. 어떠한 사회적, 경제적 유인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이 인간적이고 성스러운 '것처럼 보이는' 행위를 하게끔 유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 우리들의 몫일 따름이다.
돈만 아는 의사놈이 뭐 어때서 그러시나. 자본주의가 원래 돈(資本)을 주인(主) 자리에 놓는 사상(義)이란 뜻인 것을 어찌 하란 말씀이신가. 명예와 신성의 가치가 현격히 떨어졌을 뿐더러 '인간적'인 사람은 바보 취급을 받는 세상이다. 그나마 사람들은 의사의 멱살을 잡고 의사에 대한 뒷담화를 즐김으로써, 그 가치없는 명예조차 의사로부터 빼앗아갔다. 그렇다면 남는 건 돈 뿐이다. 의사들이 돈만 알게 된 것은 갑자기 자격없는 의사놈들이 많이 태어났기 때문도 아니고, 의과대학의 교육과정에 윤리 교육이 부족하기 때문도 아니다. 그저 시스템이 의사들을 그렇게 몰아갔을 따름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우리가 진실로 고민해야 할 것은 의사들에게 어떻게 하면 '봉사와 희생' '인간다움'을 강요할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봉사와 희생' '인간다움'을 흉내낼 만한 사회적 유인을 제공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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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지금 교사 월급으로는 미술가, 상담가, 강사, 행정가, 체육자, 경리 등등 이 모든 것을 처리할 수가 없어요. ㅠㅜ 당장 밀려있는 공문이 몇개인지;;;;; 월급날에만 일에 대한 의욕이 무럭무럭 솟아나요.;;;
교사의 직무가 얼마나 과중한지, 저야 교사가 되어 본 적이 없으니 잘 모르지만.... :)
여하튼 힘내세요. 요즘 꼬맹이들은 워낙 영악하니 교사가 여기 치이고 저기 치이면서 일 잘 못 처리하더라도 "뭐 공교육이 다 그렇지" 하고 넘어가 줄 거에요...... (이건 좀 아닌가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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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참고하시면 좋을 듯 하여.
http://sarangbang.or.kr/bbs/view.php?board=hrweekly
좋은 글이었습니다. 헌데 몇 가지 첨언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대부분의 인권운동이 당면해있는 문제는 이러한 운동이 경제논리, 즉 돈의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소개해주신 글에서도 "병원비가 너무 비싸" "병원에 진 빚이 너무 많으면 빚을 탕감해줬으면 좋겠어" 같은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였으나, 안타깝게도 재단이 운영하는 대부분의 병원은 적자를 내고는 유지될 수 없다는 점에서 영리법인에 가깝습니다. 안타깝게도, 병원이 내는 수익은 그들이 투자한 자본금에 비해 매우 적은 편입니다. 병원이 '인명을 다루는 신성한 공간'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실제로 병원을 운영하는 인간이 '자본주의적으로 합리적인 인간'이라는 생각을 해 보자면, 병원 운영자들이 병원을 관두고 다른 사업을 벌일 때 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의료급여제도의 개악은 건강보험의 급여, 특히 암과 같이 기하급수적으로 치료비가 들어가는 심각한 질환에 대한 보장을 상승키 위한 반대급부였을지도 모릅니다. 건강보험료를 극적으로 인상하지 않는 이상 의료급여제도도 유지하고 건강보험제도도 강화하는 윈윈 전략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그 빈틈을 민간의료보험이 채우게 될텐데, 민간의료보험에 의해 채워진 분야가 자본의 몫으로 3할~5할 이상을 떼어갈 것임은 너무도 자명합니다. 건강보험과 병원, 의료급여제도가 당면한 이러한 딜레마에서, 인권운동은 어떤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자본주의 사회 라고? 50년동안 변하지 않은 의료법을 가지고 의료법의 테두리내에서
무슨짓이든해도 누가 뭐라 할수없게 만든게 자본주의라고?
그건아니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시대의 그 독선과 아집을 고스란히 간직한체
아직도 모든 의료행위의 정점에 있는 그들인데 그들의 주장은 지금도 옳고 영원히 옳다 그역시 그들의 시각이기때문이다.
변하지 않은게 없다지만 그들만은 변하지 않으면서 돈을 벌려고한다. 자본주의가 아니지.경쟁이 없는데 독점인데 사람의 몸에 무슨짓을해도 허나 대다수 의사 그직업의 가치를 폄하하고 훼손할려고 하는게 아니다.
그렇치 않게 돈을 버는 돈만버는 사람들과 더 통증의 나락으로 빠져드는 국민들이
자신이 무엇이 잘못된줄도 모르고 누가 제어하지도 제어해주지도 않는 현실의 변화를 요구하는것이다. 당해도 이것이 잘못인지 모르는 대다수 바보들에게 약간의변화일뿐이지
얘기하느라 고생하셨다. 근데 이건 의료법 얘기가 아니다. 엉뚱한 데에다 감정 배설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그래도 파란속 님의 얘기에 반론을 펼칠 여지가 있어 몇 가지만 써 보고자 한다.
의료법이란 건 원래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의료법의 테두리 내에서 무슨 짓이든 해도 누가 뭐라 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 표현했는데, 의료법의 테두리가 아주 엄격하다면 어떨까? 엔간한 일은 전부 다 위법일 정도로 아주 엄격한 규칙을 정해놓았다면, 그래도 그게 문제가 될까? 의료인에게 배부되는 게 '자격증'이 아니라 '면허증'이란 점에 유념해야 한다. 이 사람은 이러이러한 능력이 있습니다, 하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은 일반적으론 금지된 이러이러한 행위를 하도록 허락되어 있습니다, 란 얘기다. 의료법의 의의란 "의료법 내에선 아무 일이나 할 수 있게 해 주는" 게 아니라, "의료법 밖에서는 어떤 일도 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어째서? 의료 시장이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시장 실패가 일어나기 쉬운 공간이고, 시장 실패가 일어날 경우 예상되는 피해가 무한대이기 때문이다. 유시민 장관의 말처럼, 인명은 무한대의 가치를 가진 상품이다. 보통의 경우 시장 실패가 일어나더라도 '금전적인' 피해가 발생하고 '후생상의' 손해가 일어날 뿐이지만, 의료 시장의 경우 시장 실패가 일어나면 무한대의 가치를 가진 상품인 '인명'이 희생당한다. 따라서 의료법은 국가 전체적으로 '금전적인' 손해와 '후생의' 손해를 일으키더라도, 당시의 사회적 상식과 과학적 지식 안에서 환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가장 적합한 치료방법을 강요하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왜 '강요' 하냐고?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강요하지 않으면 의료소비자가 사이비 교주 따위에게 속아넘어가 무안단물이나 심천사혈요법 따위로 치료를 시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무슨무슨 침 40일 강좌" 따위나 듣고 나와서 의료인이랍시고 거들먹거리는 한의사가 많아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것 같은데...... 혹여 파란속 님의 의견이 "심천사혈요법사도 의료인으로 인정하라!"는 식의 것이 아니길 빈다.
그렇다면 의료법의 테두리 안에서 의료 카르텔을 형성하고, 돈벌이에 혈안이 된 의사들도 용서할 수 있겠냐고? ㅅㅂ "의료 카르텔을 형성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의사나 한의사나 매한가지다. 이런 현실을 혐오한다. 그러나 의료 카르텔을 형성한 의사나 한의사마저 혐오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게 현실이니까. 이 정도의 카르텔은 자본주의 사회의 그 어떤 구석에서나 일어나는 것이다. 의료 카르텔은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약한 카르텔에 속한다고 본다. 그래도 "의사들은 인명을 다루므로" 돈벌이를 위해 그런 짓을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의사 이 시방새들아" 하며 그들의 명예를 계속 실추시키는 것보다 다른 사회적 유인을 제공하여 의사들이 '의료 카르텔'을 형성하거나 돈벌이에 혈안이 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의사 또한 경제학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길을 선택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하에서 부가가치로 추락해버린 명예, 그 명예마저 잃은 의사들이 무엇을 추구하겠는가? 당연히 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