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전 날, 학교에서는 수위와 아이들의 숨바꼭질이 펼쳐진다. 자정을 넘겨서까지 축제를 준비하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찾아내 집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수위의 두뇌 싸움! 아이들은 학교에 남아있다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교실 불을 꺼 놓은 채 작업중이고, 그 와중에 아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야참을 사들고 찾아온 신참 교사가 어느새 팔을 걷어붙이고 함께 웃고 떠들며 축제를 준비한다. 대부분의 축제가 그렇지만, 바로 이 순간이 축제 중 가장 즐거운 순간이다. 자유롭게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든다. 선보이고 싶은 것을 선보이고, 하고 싶은 일을 한다. 록 밴드의 공연에서는 격식도 통제도 벗어나 자유롭게 헤드뱅잉을 한다. 그게 우리들의 축제였다.

2002년, 한국은 처음으로 축제를 경험했다. 오프사이드가 뭔지도, 저 순간에 왜 휘슬이 울리는지도 모르던 사람들도, 축구 얘기라면 치를 떨던 바로 그 여자들도 5000원짜리 "Be the Reds" 티셔츠를 입고 광장에 모였다. 3-4-3이니 3-5-2니 하는 전술 따위엔 관심조차 없었다. 사실 축구는 매개체에 불과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골이 들어가는 순간 느낀 희열만큼은 진심이었다. 광장에서, 집 앞 맥주집에서, TV 앞에서 부둥켜안고 4강 진출을 축하하던 그 순간 사실 중요한 것은, 어른인 척 무게잡던 일상에서 벗어나, 어린애처럼 뛰고 춤추고 노래할 수 있는 축제가 열렸다는 사실이었던 것이다. 승리의 순간, 온 학교를 뛰어다니며 "오 필승 코리아"를 불러제끼던 그 날, 덧붙일 것도 뺄 것도 없는 "축제"였다.

2006년, 월드컵이 다시 열렸다. 온 세상이 시끄럽다. KTF가 만들고 "버즈"라는 아이돌 밴드가 불러제끼는 "Reds, go together" 란 노래는 온 공중파를 장악했다. 이명박으로부터 서울시청 앞 광장을 사들인 SKT는 "애국가"로 광장을 도배한다. 현대카드는 벌써부터 "아드보카트 카드"라는 괴이하기 짝이 없는 상품을 만들어냈고, "꼭지점 댄스"란 괴이한 물건은 암만 주위를 둘러봐도 출 생각이 있는 인간이 없고 대신 오로지 다음과 KTF에 의해서만 선보여진다. 4800만 모두가 붉은 악마라느니, 막 태어난 아이에게 "몇 번째 붉은악마"라느니 괴상하기 짝이 없는 언동들이 TV를 도배했다.

즐겁지 않다. "오 필승 코리아"를 부르던 그 가슴벅찬 감동은 사라졌고, 버즈의 목소리만 들어도 소름이 끼치는 조건반사가 그 자리를 차지했을 뿐이다. 점프를 하며 승리를 자축하던 2002년의 본능적인 몸짓은 "꼭지점 댄스"라는 틀 속에 갇혀 갑갑하고 기계적인 춤사위로 변해버렸다. 독일과 잉글랜드의 축구도 멋졌고,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분전도 흥미로웠다. 차붐의 어눌한 말투는 또 들어도 정겨웠으며, 월드컵 개막은 여전히 가슴설렜다. 그러나 그것 뿐이었다. 2002년과 같은 축제는 없었다.

고등학교 때, 우리는 우리의 성취감과 즐거움을 위해 축제를 준비했다. 어떻게든 애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려는 교장 선생과 교감 선생의 마수에서 도망쳐, 자정이 넘어서까지 웃고 즐기며 스스로 축제의 장(場)을 만들었다. 수위는 그저 불이 켜진 교실이 있어야 어슬렁어슬렁 움직일 뿐 불 꺼진 교실에서의 아이들의 즐거움까지 망치려 하진 않았으며, 어떤 신참 교사는 한 술 더 떠 그 장에 함께 웃으며 동참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건 우리들의 축제였다. 공연도 보고, 주전부리거리도 먹고 하며 마음껏 즐겼다. 아무도 통제하지 않았고, 심지어 교문 밖으로도 나갈 수 있었지만 대부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우리들이 만든 축제였고, 우리들이 이끌어가는 축제였으니까.

이제 우리는 SKT와 KTF, 붉은 악마와 각종 자본 권력이 만들어낸 축제를 눈앞에 두고 있다. 즐거울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축제 때 가장 재미없었던 프로그램은, 학교에서 큰 돈을 들여 준비한 "가수 초청 공연" 이었다. 모두들 하품을 하며 그냥 집에 가 버렸다. 그런 것이다. 그들의 축제는 그들을 위한 것이지, 우리를 위한 것은 아니다. 우리에겐 우리의 축제가 필요하다. 2002년, 자발적으로 시청 광장을 향해 뛰어갔던 그 붉은 티의 사람들처럼.


2006/06/11 16:14 2006/06/11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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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짜집시 2006/06/11 18:01 | PERMALINK | 고치기 | 답하기 |

    혁명은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당신들 스스로가 혁명이 될 수 있을 뿐입니다. 혁명은 당신들의 영혼에 있거나, 아니면 어디에도 없습니다 -- 어슐러 르귄의 '빼앗긴 자들' 에서, 쉐벡.

    축제는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우리들 스스로가 축제가 될 수 있을 뿐입니다. 축제는 우리들의 영혼에 있거나, 아니면 어디에도 없습니다. -- 위 대사를 표절하여.

  2. 예인 2006/06/12 15:36 | PERMALINK | 고치기 |

    계속 곱씹어보게 되는 말이군요. 우리들 스스로가 축제가 될 수 있을 뿐.......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되네요.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3. 미디어몹 2006/06/12 18:08 | PERMALINK | 고치기 | 답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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