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햅틱' UI(User Interface, 사용자가 기기를 이용하는 방식의 총칭), 외국에서 '터치위즈'로 불리는 이 UI는 최근 국내 휴대전화 제조사가 만든 UI 중 가장 큰 저주를 받고 있는 물건이다. 엔가젯은 이를 '심각할 정도로 기괴하다'고 표현했고, 기즈모도는 '뇌가 즙이 되어 흘러내릴 지경'이라고 표현했다.

사실 만듦새가 형편없기로는 LG가 아레나와 뉴초콜렛 등에 적용한 S-CLASS가 한 수 위일 것이다. 그러나 LG의 아레나와 뉴초콜렛은 그 형편없는 UI로 인해 다른 여러 미덕에도 불구하고 형편없는 실적을 거두었다. 굳이 패자에 대한 관대함이 아니더라도 S-CLASS를 굳이 비난할 필요가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LG는 언제든지 S-CLASS를 실패작으로 규정하고 버릴 수 있다.

반면 햅틱은 성공했다. "햅틱은 터치의 다음 기술"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마케팅의 결과일지도 모르겠지만, 실제 아이폰(iPhone)이 없던 한국 시장에서 햅틱은 터치폰의 거의 유일한 대안이기도 했다. 따라서 수백만명의 햅틱 유저들, 혹 그 이상 많은 사람들이 햅틱이란 UI에 '익숙해졌다'. 이는 삼성이 햅틱, 또는 터치위즈를 쉽게 버릴 수 없게 만들었다. - 혹 의심컨데, 삼성은 실제 햅틱 또는 터치위즈를 잘 만든 UI로 오해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삼성전자의 옴니아 2는 햅틱 또는 터치위즈라 불리는 이 UI로 인해 "심각할 정도로 기괴한" 휴대전화가 되었고, 역시 삼성전자의 안드로이드폰인 비홀드 2는 역시 이 UI로 인해 "뇌가 즙이 되어 흘러내릴 지경의" 휴대전화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UI는 그 세를 불려나가고 있다. 삼성전자가 우리나라에서 출시할 예정이라는 새 안드로이드폰 역시 햅틱 UI를 통해 '사용 편의성'을 고려했다고 한다.

QWERTY 경제학으로 불리는 어떤 이론은 어떤 우연(fortuna)에 의해 지배적 지위를 획득한 디자인이 객관적으로 우월한 디자인을 시장에서 압도하는 현상에 대해 설명한다.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으로도 칭해지는데, 인간의 경제적 의사결정이 이성보다 과거의 전례, 소위 관성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그 예가 기타 자판방식에 비해 타이핑 속도가 매우 느림에도 불구하고 결국 시장에서 지배적 지위를 획득한 QWERTY 자판 방식이다.

햅틱 UI 역시 그 만듦새가 엉망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익숙해짐으로써' 현재의 지배적 지위를 획득했다. 물론 삼성이 판매한 햅틱 시리즈, 옴니아 시리즈의 수만큼 소비자들의 후생은 저하되었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햅틱, 혹 터치위즈로 불리는 이 UI는 한국 시장에서 끝까지 지배적인 위치를 고수할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는 다소 다른 견해를 낼 수 있다. 사실 현존하는 터치스크린폰의 UI는 그 태생이 아이폰 UI다. 햅틱 UI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햅틱 UI를 쓰던 사람이 아이폰 UI는 쓰기 어려워한다거나 모토로이 UI 사용을 위해 별도의 학습을 요한다거나 하진 않을 것이다. QWERTY 경제학의 이론이 햅틱 UI에도 적용되리라는 것은 무리가 있다. 오히려 햅틱 UI에 갇힌 것은 소비자들이 아니라 삼성전자 그 자신인 것이다.

이하는 QWERTY 경제학에 대한 사족.

동아일보의 어떤 논설위원은 70, 80년대 한국 경제의 발전이 국가가 직접 개입해 우연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냄으로써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국가가 'QWERTY 자판' 같은 것을 만들고 이를 밀어붙임으로써 시장을 지배하게 만들고, 이를 통해 경제를 성장시켰다는 논리다. 따라서 앞으로도 국가가 나서서 새로운 21세기형 QWERTY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는 상당히 이상한 주장이다. QWERTY는 소비자의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경제의 외형을 불리기 위해 소비자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라는 것이 그의 주장인 셈이다. 경제 성장의 목적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것임을 생각해 볼 때, 이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이다. 정작 QWERTY 경제학을 얘기한 폴 크루그먼은 전략적 무역론을 매우 싫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0/02/04 15:03 2010/02/04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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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10/02/04 20:32 | PERMALINK | 고치기 | 답하기 |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2. 예인 2010/02/04 20:53 | PERMALINK | 고치기 |

    재미있는 글이네요. 사실 영문글은 너무 길어서 읽어보질 못했지만;;
    마지막 글만 봐도 충분히 대강의 요지가 전달이 됩니다. 시장의 실패가 아니라 경제학자들의 실패라는 부분에서 개그센스가 돋보이네요. ㅎㅎㅎ

    그런데 왜 이런 좋은 댓글을 굳이 비밀댓글로;;;

  3. 나그대 2010/02/04 23:59 | PERMALINK | 고치기 | 답하기 |

    읽다보니 삼성의 AMOLED 용어의 선점이 생각나네요.

  4. 2010/02/05 10:25 | PERMALINK | 고치기 | 답하기 |

    햅틱을 아이팟터치를 한참 쓰고 나서야 접했습니다.
    경악 그 자체였죠.
    그거 쓰느니 그냥 폴더형 2G폰 쓰겠습니다.
    그걸 계속 고수한다..
    장사의 의지가 있는 걸까요?

  5. suhhyng 2010/02/05 13:13 | PERMALINK | 고치기 | 답하기 |

    스마트폰의 UI만 걷어내고 다시 롬빌드 하면 하드웨어 스펙은 괜찮아서 쓸만합니다;; 다만 그냥 '폰'으로 놓고 보면 끔찍한 UI가 되버리는 거죠. 최적화만 염두에 두면 명작을 탄생시킬 수도 있을텐데 그럴 겨를이 없나 봅니다.

  6. 예인 2010/02/08 01:11 | PERMALINK | 고치기 | 답하기 |

    suhhyng 님의 말씀도 맞는데 사실 그렇게 만든 명작은 너무 마니악해진다는 문제가....;;;

    삼성으로서는 햅틱 인터페이스를 포기할 수가 없을 거에요. 못 만든 인터페이스이지만 이미 너무 대중화됐으니까요. 물론 사실...... 햅틱 인터페이스랑 생긴 건 비슷하지만 확고한 UI의 철학을 갖춘 뭐 그런 인터페이스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한데 삼성이 그런 데 정력을 쏟는 회사도 아닌 것 같고...... 어째 햅틱을 점점 기괴하게 변형시키고 있는 걸 보면 햅틱 인터페이스가 정말 잘 만든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