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민족주의, 1등지상주의
무거운 이야기 (舊) | 2010/03/06 13:33
금메달, 금메달입니다.
아, 아쉽네요, 은메달에 그쳤습니다.
한때 올림픽이면 늘 듣던 해설자의 목소리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TV에서 이런 해설을 듣기 힘들어졌다. 이런 문화가 금메달만 자랑스러워하는 1등 지상주의의 폐해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이를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뒤이어 많은 지식인들은 금메달 수로 올림픽 국가 순위를 매기는 방식도 마찬가지로 1등 지상주의의 폐해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은메달, 동메달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한국만의 특이한 1등 지상주의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세계적인 추세에 맞추어 우리나라도 메달 총계를 통해 메달 순위를 정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심지어 최근 훌륭한 블로거인 이정환 님도 "미국과 캐나다 등 대부분 나라들이 전체 메달 수로 순위를 산정"한다는 내용의 글을 썼는데, 이는 다소 왜곡된 것이다. 북미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금메달 수로 순위를 산정한다고 한다. 미국과 캐나다가 오히려 독특한 경우인 것이다. 어떤 관점에 따르면, 원래는 미국도 금메달 수로 순위를 산정했으나 메달 총계로 순위를 산정하는 것이 자국에 유리해지자 산정 방식을 바꾸었다는 견해도 있다.
이렇게 되면, "무엇이 옳은 방식인가"에 대한 논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사실 은메달 100개가 금메달 1개보다 못한 '금메달 우선 산정 방식'은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금메달과 은메달, 동메달이 똑같은 메달 1개의 가치를 갖는 방식이 딱히 더 옳아보이지도 않는다. 올림픽은 경쟁이고, 1등과 2등이 같을 수는 없다. 게다가 이 방식을 적용해도 4등부터 배제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참가한 모든 선수들에게 영광을 돌린다는 아름다운 치사를 그대로 가져다붙인다면, 극단적으로 말해 선수단 규모가 그대로 순위가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사실 올림픽 헌장에 따르면, 올림픽은 틀림없이 '경쟁'이다. 김연아의 금메달은 아사다 마오의 은메달보다 더 빛나는 것이다. 1등이나 2등이나 가치가 똑같다고 말하는 것은 그냥 멋진 정치적 발언일 뿐이지 정말 그렇게 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2등, 3등, 심지어 꼴등이라도 그 가치를 비하할 수는 없고, 그 가치를 비하하는 것은 분명 큰 문제다. 모두 그 나름대로 아름답고 그 나름대로 큰 가치가 있다. 하지만 금메달에 가장 큰 권위를 부여하는 것 자체를 문제시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이런 올림픽의 아름다운 '경쟁'을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다른 모든 부분에 가져다붙이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학생들을 중간고사 성적 순으로 '경쟁' 시킨다거나, 친구들이 서로 누가 연봉을 많이 받느니 하며 '경쟁'한다거나. 이런 엉뚱한 확대해석이 문제일 뿐이지 올림픽을 경쟁으로 바라보는 것은 전혀 문제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편, 또 올림픽 헌장에는 경기자가 국가를 대표해서 참가하기는 하지만 결국 올림픽 경기는 개인간의 경쟁일 뿐 국가간의 경쟁이 아님이 정확히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메달 총계를 통해 메달 순위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국가 순위를 정하지 않는 것이 될 것이다. 금메달을 딴 건 김연아지 대한민국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국민인 내가 금메달을 딴 것도 아니다. 김연아의 금메달이 빛내는 건 김연아 그 자신이지 대한민국이 아닌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나와 같은 문화를 체험하며 자란, 다시 말해 대한민국을 대표해 경쟁에 나선 선수들을 응원하게 된다. 그들이 이긴다고 해서 딱히 우리에게 돌아오는 떡고물이 없는데도 말이다. 이건 어떤 합리적인 이유를 굳이 찾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합리적인 이유를 찾으면 찾을수록 그 색깔이 바래는 것이다. 우리가 사랑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려 하지 않고 그 경제적인 가치를 따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이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저작권은 노컷뉴스에 있습니다.
선수들이 경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얻은 영광이 '응원'이나 '국가대표' 같은 명목하에 엉뚱한 사람들의 영광으로 치환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사실, 오늘날 올림픽에서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민족주의가 아니라 소위 국격(國格)이니 국익(國益)이니 하며 선수들의 영광을 교묘히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자신의 몫으로 돌리려드는 소위 '윗분'들의 프로파간다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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