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이 아니면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 한국을 포함, 선진 의료제도를 가진 나라라면 어느 나라든 그렇다.

그런데 이 당연한 조항에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침사인 김남수 씨와 그가 뜸을 가르치는 것으로 알려진 '뜸사랑'이라는 단체가 바로 그 사람들이다. 그들은 의료인들이 폐쇄적인 카르텔을 통해 소비자들의 의료 선택권을 박탈하고 있으며, 침구와 같이 부작용이 적은 대체의학은 별도의 자격을 신설하여 소비자들의 의료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또다시 "의료인이 아니면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는 요지의 의료법 27조 1항에 대한 위헌제청이 있었다. 결과는 합헌 4, 위헌 5로, 위헌 판결에 필요한 정족수(6명)를 채우지 못해 합헌 판결. (헌재 결정 요약문) 그동안 늘 합헌 9, 위헌 0으로 합헌 판결이 내려졌던 것을 생각해 보면 놀라운 결과다. 재판부는 왜 김남수 씨와 그 제자들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기 시작했을까. 과연 재판부의 판단은 옳았을까.

우선 4명의 재판관은 소수의견에서 "침구 등은 생명, 신체에 대한 위험성이나 부작용에 있어서 낮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현행 의료인에게 독점시키는 것은 부적합"하며 "침구 등을 행할 수 있는 의료 유사업자를 신규로 인정하는" 것이 소비자의 의료행위 선택권 보장을 위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일견 옳은 지적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우 잘못된 인식이다. 이 재판관들은 의료행위를 마치 공장의 자동생산공정처럼 '나눌 수 있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침구가 위험성이 낮다는 재판관들의 견해를 인정하더라도, 침구 시술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진단이나 경과의 관찰, 의료 지도 등 고도화된 의료 행위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일련의 '의료 행위 과정'은 연속적이고 매우 전문적인 것이다. 어디까지는 별로 위험하지 않으니 의료 유사업자가 진찰해도 되고 어디부터는 위험하니 전문 의료인이 진찰해야 한다는 식의 구분이 불가능한 것이다.

예를 들어 '몸살 기운'을 호소하는 환자는 위험한 환자일까, 위험하지 않은 환자일까? 단순히 증상의 경중만으로는 이 환자의 감염이 심각한 것인지 심각하지 않은 것인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타이레놀 몇 알이면 호전될 수도 있지만, 입원 치료가 필요한 간염 등의 심각한 감염일 수도 있다. 이런 환자가 의료 유사업자에게 침구 시술을 받는 것은 소수 재판관들의 의견처럼 '위험성이나 부작용이 낮은' 것인가? 침구 시술로 인한 직접적인 부작용이 적다고 해서 침구 시술이 안전하다는 재판관들의 견해는 의료 행위를 너무 단순하게 파악한 것이다. 당장 김남수 씨는 뜸을 이용해 암 환자의 경과를 호전시켰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관련 기사) 침구가 안전하므로 침구를 이용해 암 환자를 치료하는 것도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또, 의료인의 종류가 늘어난다고 해서 소비자들의 의료 선택권이 확대된다는 것 역시 지나치게 단순화된 논리다. 다시 '몸살 기운'을 호소하는 환자의 예로 돌아가 보자. 이 환자는 어디로 내원해야 할까? 내과? 이비인후과? 한의원? 의료 유사업자? 사실 대부분의 질병에서 나타나는 증상이 '몸살 기운'이다. 환자는 자신의 몸 어디에서 이상이 생겨 몸살 기운이 도는지 알 수가 없으며, 따라서 어떤 의료기관에 내원하는 것이 자신에게 가장 유리할지도 전혀 알 수가 없다. 이 상황에서 어떤 의료 기관을 선택할 지 선택권을 준다는 건 무의미하다. 이건 선택이 아니라 야바위에 가깝다.

이 환자는 결국 침뜸을 시술하는 의료 유사업자에게 가기로 결정했다. 의료 유사업자는 당연히 환자에게 침뜸 시술을 권할 것이고, 환자는 의료 유사업자의 처방대로 침뜸 시술을 받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환자의 '선택권'이 끼어들 구석은 없다. 이걸 선택이라고 부르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것이 바로 정보 불균형에 의한 시장 실패의 한 단면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일견 의료 선택권을 제약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행 제도가 오히려 환자의 의료 선택권을 더 넓게 보장한다. 환자는 국가에 의해 통제되고 관리되는 의료기관에 내원하고, 의료 행위에 대한 폭넓은 권한을 가진 의료인으로부터 최대한의 정보와 최적화된 치료법을 안내받는다. 의료인은 다양한 진료와 처방을 할 수 있으므로, 의료 유사업자처럼 자신이 행하는 소수의 한정된 치료법만을 권할 이유가 없다. 만일 어떤 검사에서 환자의 상태가 심각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관찰된다면 의료인은 환자에게 병원이나 종합병원 등 2/3차 의료기관에 내원할 것을 권할 것이다.

사실 이 논리는 의학 / 한의학계 사이에 늘 첨예한 갈등을 일으키곤 했던 '어떤 이슈'에서 궁극적으로는 '어떤 방향', 아마 많은 의료인들이 그리 원치 않을 '그 방향'이 옳다는 근거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의료인의 종이 많아지는 것이 의료 선택권을 확대할 수는 없다.


2010/08/14 16:58 2010/08/14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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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행인 2010/08/14 22:19 | PERMALINK | 고치기 | 답하기 |

    와우 명쾌하시네요. 근데 판결은 정치적인 문제라서 이번엔 한의협이 무능한 짓을 한 걸로 보입니다. 뜸사랑보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닐텐데 왜 저런 결과까지 가게 만들었을까요?

    아 그리고 새글은 계속 올리시는 건가요?

  2. 예인 2010/08/14 23:06 | PERMALINK | 고치기 |

    넵. 9대 0이 당연했던 이슈가 갑자기 4대 5까지 역전당한 걸 보면....... 그래도 의료 5단체가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했으니 앞으로 이런 무능돋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옛 글도 지운 건 아니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끝나면 다시 일괄 공개로 돌릴 예정이에요. :) 새 글은 문제의 소지가 없는 수준에서 계속 올릴 예정입니다. ㅎㅎㅎ

  3. 행인 2010/08/15 19:51 | PERMALINK | 고치기 | 답하기 |

    우왕 그렇군요. 요즘 의료관련 포스팅을 쓰시는 거 같은데 시간되신다면 잉여력넘치는 이글루스에서 벌어지는 한의학관련 논쟁도 포스팅을 해주심이!!

    http://hagi87.egloos.com/1765499

  4. moon6 2010/08/16 04:22 | PERMALINK | 고치기 | 답하기 |

    ㅋㅋ 유쏘쿨. 근데 사진은 쫌 재수엄따..ㅋㅋ

  5. 예인 2010/08/25 22:12 | PERMALINK | 고치기 |

    으잇 쌤... ㅋㅋ
    안 재수없는 사진은 여기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http://yeinz.kr/ext/bone.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