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람들은 '부당청구'를 사전적 의미 그대로 받아들여 부당한 것으로 생각하곤 한다. 국회에서는 "대형병원의 부당청구가 심각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뉴스는 그 목소리를 그대로 전하며, 뉴스를 접하는 시민들은 비양심적인 병원들이 환자들의 등골을 빼먹고 있다고 생각한다. 의사는 졸지에 사기꾼이 된다.

그러나 '부당청구'는 정말로 부당한 것일까? 몇년 째 서울대병원은 압도적으로 '부당청구로 인한 환급액'에서 전국 1위를 달리고 있다. 뉴스는 그냥 "서울대병원 나쁜병원" 따위의 묘사로 설명을 끝내 버리지만 이건 아무래도 이상하다. 개인 병원도 아니고, 그 위상이 교육부에 맞먹는다는 대한민국 최고의 '국립' 대학교 부속병원이 대체 '부당청구'를 해서 어떤 '부당한' 이득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대체 그 '부당한' 이득은 누가 얻는단 말인가? 서울대학교가? 국가가? 아니면 서울대병원 지하에서 대한민국의 의료제도를 지배하며 부당청구를 지시하고 그 이득을 뽑아먹으면서 악의 씨앗을 꽃피우는 악당 렉스 루터가?

이 미스테리의 해답은 사실 간단하다. 대한민국 최고의 국립대 병원이 부당청구 1위의 오명을 뒤집어쓴 이 아이러니는 사실 부당청구가 부당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발생한다. 부당청구가 부당한 것이 아니라는 건 대체 무슨 뜻일까? 전문가의 견해를 들어보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정책연구실은 서울대병원이 부당청구 1위란 오명을 쓰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서울대병원은 3차 의료기관이면서 국립대병원이라는 특성상 희귀, 난치성 환자나 중증도가 높은 환자들이 많아 복잡한 시술과 신의료기술 등의 적용사례가 빈번할 수 밖에 없다. 현재 건강보험 급여 기준은 정형화된 진료를 요구, 환자의 다양한 중증도와 개인차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중증도가 높아 약제를 보험인정기준보다 과량으로 투약해야 하는 경우나 상태 변화가 심해 기준보다 많이 검사해야 하는 경우 삭감을 당할 수 밖에 없다.

환자의 상태를 고려했을 때 꼭 필요한 처방이라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인정하지 않으면 이는 '부당청구'가 된다. 문제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심사 기준이 현직 의사가 판단하기에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는 것. 유명한 블로그 코리아헬스로그에서도 관련된 에피소드를 읽어볼 수 있다. (관련글) 심각한 신경섬유종 환자를 치료하고서도 '너무 많이 치료했다'는 이유로 삭감을 당한 에피소드도 한 블로그에서 읽어볼 수 있다. (관련글)

물론 모든 부당청구가 부당하지 않다고 주장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이런 '부당하지 않은 부당청구'가 상당 비율 존재한다는 것이다. 의학드라마 마니아들은 '하우스'를 보며 왜 우리나라엔 저런 훌륭한 의사가 없느냐고 반문하겠지만, 사실 '하우스'가 한국 의사라면 '천재 의사'가 아니라 '부당청구의 제왕'으로 불렸을 것이다. 이게 현재 한국 의료제도가 가진 문제점이다. 낮은 의료수가에서부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삭감, 부당청구, 이 모든 것들은 실상 한국 의료제도가 지금 제대로 굴러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0/08/15 15:46 2010/08/15 15:46

http://yeinz.kr/blog/trackback/692 (주소를 클릭하면 클립보드로 복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