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곡선을 위주로 한 경제의 공급측면
경제 | 2007/02/08 13:35
고전정치경제학의 가정에 따라, 총공급은 노동시장에 좌우된다. 노동시장에서 공급은 실질임금에 비례하여 늘어나고, 수요는 실질임금에 비례하여 줄어든다. (기업가는 임금이 쌀수록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려 하고, 노동자는 임금이 비쌀수록 더 많이 일하려 한다. 노동자의 경우 임금이 높아질수록 경제적 여유가 생겨 더 많은 여가를 향유하려하는 경향도 있으나, 이러한 성향은 임금이 비쌀수록 더 일하려는 경향에 비해 비교적 낮게 나타난다.)
명목임금이 변화하지 않는 한, 실질임금은 물가수준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 만일 기업가와 노동가가 물가상승률을 똑같이 명확히 인식한다면 어떨까? 물가수준이 상승하면 명목임금도 같은 비율로 상승할 것이고, 물가수준이 떨어지면 명목임금도 같은 비율로 하락할 것이다. 노동공급과 노동수요의 균형점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물가수준이 상승할수록 실업률이 떨어지고(즉, 고용률이 올라가고) 실질임금이 하락하는 효과가 관찰된다. 이러한 경향성을 나타낸 그래프가 AS 곡선으로, AD 곡선이 음의 기울기를 갖는 것과 달리 양의 기울기를 갖는다. 따라서 개방경제의 균형점은 최종적으로, AD 곡선과 AS 곡선의 교점에서 나타나게 된다. (이는 미시경제에서의 시장균형과 아주 비슷한 형태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물가수준에 대해 정확한 이해를 하고 있다면 AS 곡선은 수직선으로 나타나야 한다. (이 수직의 AS 곡선을 SRAS라 한다.) 물가수준이 변해도 고용률에는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화폐환상과 임금의 하방경직성 때문에 AS 곡선이 양의 기울기를 갖게 된다. 우선 기업체는 명목임금을 깎을 수 없다. 노동조합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물가가 하락한다 해도 명목임금을 깎을 수 없다면 실질임금은 사실상 상승하며, 기업체는 해고를 통해 손실을 보존한다. 자연히 전체경제의 총공급량은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럼 물가가 오른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물가가 10% 올랐을 때 명목임금을 5%만 상승시켰다면 사실상 실질임금은 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노동자는 당장 손에 들어온 화폐가 늘어났기 때문에 그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이 현상이 '화폐환상'이다. 따라서 물가가 상승하면 실질임금이 사실상 하락하고, 기업체는 고용을 늘려 전체경제의 총공급량을 늘린다(?). 화폐환상과 임금의 하방경직성이 케인지언이 AS 곡선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반면 신고전학파나 신자유주의자들은 다른 방식으로 AS 곡선을 설명한다. 소위 루카스 공급곡선이라 불리는 이 곡선은 다음과 같은 메커니즘에 따라 나타난다. 각 기업은 가격에 따라 생산량을 조절한다. '배나와'의 시장가격이 100원에서 150원으로 상승한다면, 기업은 배나와의 생산량을 늘려서 더 많은 수익을 추구하려 할 것이다. 이것이 미시경제의 아주 단순한 모형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렇게 단순하지 않은데, 물가상승률이 있기 때문이다. '배나와' 이외의 다른 물건들도 다 50%씩 가격이 상승했다면 사실 배나와의 시장가격은 오르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각 기업은 자사 제품의 가격과 예측되는 전체경제의 물가수준을 모두 감안하여 생산량을 조절한다. 이를 거시경제 측면에서 바라보자. 모든 기업이 이런 메커니즘을 통해 생산량을 조절하다고 감안할 때, 각 기업이 '예측한 물가수준'이 실제 물가수준보다 낮은 경우 생산량은 더 늘어나게 된다. 반대로 각 기업이 '예측한 물가수준'이 실제 물가수준보다 높다면 생산량은 줄어들게 된다. 즉 실제 물가수준이 높을수록 생산량이 늘고 실제 물가수준이 낮을수록 생산량이 줄어드는, 양의 기울기를 가진 곡선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이 루카스 공급곡선이다.
또한 뉴케인지언들은 또다른 방식으로 AS 곡선을 설명한다. 각 기업은 물가수준에 따라 가격을 유동적으로 결정하는데, 개중에는 가격을 경직적으로 설정하는 기업들도 있다. 이렇게 경직적으로 가격을 설정하는 기업이 많을수록 총생산의 유동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양의 기울기를 가진 AS 곡선이 나타난다. 그 어떤 설명방식을 채택하든 양의 기울기를 가진 AS 곡선은 나타나지만, 실제로 이런 관점의 차이 때문에 케인지언과 신고전학파, 뉴케인지언들은 서로 다른 정책을 주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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